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페르디난트 (문단 편집) === 자녀 === ||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 '''1녀''' || [[조피 폰 호엔베르크|호엔베르크의 조피 여후작]][br]{{{-2 (Princess Sophie of Hohenberg)}}} || [[1901년]] [[7월 24일]] || [[1990년]] [[10월 27일]] || 프리드리히 폰 노스티츠리네크 백작[br]슬하 3남 1녀 || || '''1남''' ||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호엔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안]][br]{{{-2 (Maximilian, Duke of Hohenberg)}}} || [[1902년]] [[9월 29일]] || [[1962년]] [[1월 8일]] || 마리아 엘리자베트 보나 폰 발트부르크 추 볼페크 운트 발트제 여백작[br]슬하 6남 || || '''2남''' || [[에른스트 폰 호엔베르크|호엔베르크의 에른스트 후작]][br]{{{-2 (Prince Ernst of Hohenberg)}}} || [[1904년]] [[5월 27일]] || [[1954년]] [[3월 5일]] || 마리테레즈 우드[br]슬하 2남 || 자녀들의 인생도 불행했다. 앞서 서술했다시피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의 자녀들은 모두 [[귀천상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들은 [[오스트리아]]의 [[왕정복고]] 문제에 있어서 국제적 발언권 및 정당성이 [[카를 1세]]의 후손들보다는 높은 편인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 원인이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 때문인데다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이 될 때는 이들이 아닌 카를 1세가 제위를 계승해 통치를 하고 있다가 퇴위를 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카를 1세 역시도 억울한 케이스이긴 한데 어쨌든 전쟁 책임을 이유로 카를 1세의 폐위에 앞장선 협상국 국가들 입장에서는 제위 계승 및 권력과는 1도 인연이 없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후손들에겐 할말이 아예 없는 셈.] 어머니 조피의 뒤를 이어 제2대 호엔베르크 공작이 된 장남 막시밀리안(1902 ~ 1962)은 1945년부터 10년간 소련군정 치하에서 호엔베르크 공가의 본가가 있는 아르츠테텐(Artstetten)이라는 도시의 시장을 지냈다. 1926년 결혼해서 슬하 6남을 두었다. 명목상 호엔베르크 공작위는 그 장남 프란츠(1927 ~ 1977)가 승계했다. 프란츠는 [[룩셈부르크]] [[샤를로트(룩셈부르크)|샤를로트 여대공]]의 딸 엘리자베트와 결혼하여 두 딸을 보았으나, 호엔베르크 공작위가 [[살리카법]] 때문에 명목상의 공작위[* 현재 공화국인 오스트리아는 공작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동생 게오르크(1929 ~ 2019)가 이어받았다. 그는 직업외교관으로 [[바티칸]]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다. 2남 1녀를 두었으며 사후 장남 니콜라우스(1961 ~ )가 당주를 계승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Hohenberg_family|호엔베르크 공작가의 현재 남계 후손 목록]]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의 차남인 에른스트는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때 나치에게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석방되고, 이후 어렵게 살다가 1954년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장녀인 조피는 1920년에 19살 나이로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으나, [[독소전쟁]]에 참전했던 차남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레오폴트는 1945년 전쟁터에서 22세로 전사하고 같이 참전한 장남인 프란츠 페터 파울은 [[소련]] [[굴라크]]에서 1949년 28세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그녀는 페르디난트의 자식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는데 공교롭게도 부모를 죽인 일당 중 하나이며 범인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바소 추브릴로비치(1897 ~ 1990)와 같은 1990년 89세로 숨을 거뒀다. 그녀의 자녀들 중 삼남 알로이스 카를 요제프(1925 ~ 2003)는 슬하 3남 1녀를 두었다. 막내인 고명딸 조피 아말리아 테레지아는 슬하 2남 2녀를 두었다. 조피는 1929년생으로 [DATE] 현재 살아있다. 2023년 1월 12일 차남 에른스트의 차남 에른스트(1944-2023)가 사망하여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친손자 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https://eurohistoryjournal.blogspot.com/2023/01/furst-ernst-von-hohenberg-1944-2023.html?m=0|#]] 이렇듯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조피는 암살당하고 세 자녀들도 모두 개고생하면서 살았지만 셋 다 무사히 장성해서 자녀들을 남겼으며, 특히 장남인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 공작이 슬하에 무려 6남을 두었던 덕분에 사촌인 [[카를 1세]]처럼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자손 역시 많이 번성했다. [[분류:1863년 출생]][[분류:1914년 사망]][[분류:그라츠 출신 인물]][[분류: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분류:암살된 인물]][[분류:총기에 죽은 인물]][[분류:오스트리아의 왕자]][[분류:가터 훈장]][[분류:즉위하지 못한 계승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